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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s/4 Wheels

역대 최고의 자동차 # 41 to 50

by Uncle.GOM 2020. 5. 30.

※ 해당 순위는 역대 최고의 자동차 관련 해외 기사 20개에서 정리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었습니다.

50. 1951' Jaguar C-Type

앞서 소개했던 재규어 XK120의 레이싱 버전으로 모델명이 바로 'XK120-C'이며, 뒤에 붙은 'C'는 경쟁을 뜻하는 'Competition'의 'C'이다.

 

1948년, XK120는 성공적인 모터쇼 공개 이후 여러 레이스에서 활약하며 성능을 입증했지만, 아직 최고는 아니었다. 1950년, 가장 가혹한 레이스로 알려진 르망24에 3대의 XK120을 테스트 삼아 출전시켰으며, 그 결과는 12위와 15위 그리고 한대는 클러치 문제로 리타이어 했다. 첫 출전 치고는 준수한 성적이었지만, 창업주 윌리엄 라이온즈는 레이스를 위한 고성능 경주용 차량을 만들 결심을 하게 된다.

 

재규어 수석 엔지니어였던 윌리엄 헤인스가 기존 XK120의 두껍고 무거운 사각 철제 프레임 대신 경량 다중관 삼각 프레임을 새로 설계하고, 항공기 엔지니어였던 말콤 세이어가 디자인한 공기역학적인 알루미늄 바디에 162마력에서 205마력으로 튜닝된 엔진을 탑재하여 1951년 레이스 전용 모델 'XK120-C'가 완성되었다.

 

이렇게 완성된 C-Type은 그 해 르망24에서 당당히 우승을 하며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린다. 그다음 해인 1952년에는 공기역학을 위해 새롭게 수정된 부분에서 냉각 문제가 발생하여 3대 모두 리타이어 하는 불운을 맛보지만, 1953년 문제점을 완벽히 보완한 4대의 C-Type은 각각 1, 2, 4, 9위를 차지하며 완벽한 승리를 거머쥐게 된다.

 

이로 인해 미국에서 영국 스포츠카의 인기가 급등했고, 나아가 1950년대 영국 자동차 산업에 활기를 띄워 주기도 했다. 미국에서 C-Type은 XK120 가격의 2배인 약 6,000 달러에 팔렸는데, 그 당시 폭스바겐 비틀 한 대의 가격은 1,280 달러였다.

 

49. 1956' BMW 507 roadster

1950년대 유명한 자동차 수입 딜러였던 맥스 호프만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경제 호황을 누리고 있던 미국에 폭스바겐, 재규어, 포르쉐, 메르세데스 벤츠, BMW, 알파로메오 등 유럽산 자동차들을 수입해 팔며 미국의 자동차 시장을 쥐락펴락 하고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제조사에 자신이 수입해 판매할만한 신차의 개발을 직접 요구하거나 신차 개발에 일정 부분 입김을 넣기도 했다. 빛나는 은색 바디에 아름다운 걸윙 도어를 단 메르세데스 벤츠 300SL도 그가 없었다면 볼 수 없었을 거다.

 

300SL의 엄청난 성공에 자신만만해진 맥스 호프만은 럭셔리하고 비싼 스포츠카 벤츠와 저렴한 스포츠카 트라이엄프와 MG 사이의 중간 가격대인 5,000달러 정도에 판매할 새로운 차량을 찾게 된다. 그런 그가 눈여겨본 곳은 2차 세계 대전에서 지고 공장도 잃어버린 채 모터사이클 생산으로 연명하다가 이제 막 첫 자동차 501을 만들어 팔던 BMW였다. BMW로서는 손대는 차마다 성공을 시켰던 맥스 호프만의 제의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고, 회사의 사활을 걸고 새로운 스포츠카 개발에 착수했다.

 

자금이 부족했기에 기존 501의 부품을 최대한 활용하여 새로운 섀시를 설계하고 맥스 호프만의 요구에 따라 이미 준비되어 있던 디자인을 포기하고 새로운 디자이너를 영입해 맥스 호프만의 마음에 들게 새로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차체 경량화를 위해 철판이 아닌 더 비싸고 생산 시간도 많이 들어가는 알루미늄 바디를 만들어 얹었다. 엔진은 애초에 계획되었던 모델보다 높은 등급의 3.2L OHV V8 150마력 알루미늄 합금 엔진으로 최고는 아니었지만, BMW가 가진 최선의 엔진이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장거리 크루징을 위한 4인승 GT카 503도 따로 한 대 더 개발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개발이 완료된 507 로드스터는 1955년 여름 뉴욕의 월도프 에스토리아 호텔에서 발표회를 열어 첫 선을 보이게 되고, 아름다운 외관에 BMW 특유의 민첩한 주행 성능으로 사람들의 기대를 모으게 된다. 하지만, 정작 판매를 위한 양산이 시작하자 생산비용은 눈처럼 불어났고, 판매 가격은 애초에 예정되었던 5,000 달러를 넘겨 10,500 달러에 이르게 된다. 이는 벤츠 300SL의 판매 가격 7,295 달러보다 한참 비싼 가격이었다. 당연히 판매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고,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유명인이 구매했음에도 507 로드스터는 4년 동안 단 252대만이 판매되었다. 이 일로 BMW는 빚더미에 앉게 되고 회사를 메르세데스 벤츠에 매각하려 했었지만, BMW의 대주주였던 하버트 콴트의 투자로 BMW는 벼랑 끝에서 회생하게 된다.

 

우아한 바디와 역동적인 주행 성능에도 불구하고 높은 가격으로 BMW를 파산 위기까지 몰고 간 507 로드스터이지만 단 252대라는 희소성 때문에 현재 500만 달러(한화 60억 원)에 거래될 정도로 인기가 있다.

 

48. 2003' Lamborghini Gallardo

람보르기니 창립 40주년 기념 모델로, 처음 출시된 2003년부터 2014년 단종되기 전까지 파생 모델을 포함 총 14,022대가 판매되어 람보르기니 역사상 가장 많이 판매된 모델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이탈디자인에서 디자인했으며, 이탈 디자인으로서는 첫 람보르기니 디자인이었다.

 

가야르도라는 이름은 스페인어로 매력적인, 빼어난이란 뜻으로 스페인의 유명한 투우소 목장 미우라에서 키운 투우소의 이름이다. 1966년 람보르기니의 대표 모델 미우라의 이름도 저 목장에서 유래했다.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에 아우디에서 개발한 5.0L V10 엔진을 세로로 차제 중앙에 배치한 미들쉽 슈퍼카로 당시 경쟁 모델이었던 페라리 360 모데나 보다 100마력 높은 500마력을 뽑아냈다. 거기에 람보르기니가 개발한 수동 기반 반자동 변속기 'E-기어'를 연결하여 0-100km/h까지 4.1초가 걸렸고 최고 속도는 309km/h에 달했다. 하지만, 람보르기니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는 시저도어가 아닌 일반 도어가 적용되어 람보르기니 마니아들의 불만을 샀다. 이후 가야르도는 차체와 기술들은 2006년 출시된 아우디 R8의 베이스가 된다.

 

47. 1984' Ferrari 288 GTO

1984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출품된 2.8L 400마력 F114B V8 트윈터보 미드쉽 엔진 슈퍼카, 당시 국제 자동차 연맹에서 주최하는 그룹 B 랠리 참가를 위해 개발한 차량으로 모델명 뒤에 붙은 GTO는 Gran Turismo Omologato의 약자이다. 여기서 Omologato는 이탈리아어로 영어로 homologation, '승인'이라는 뜻으로, 당시 그룹 B 출전 규정에 200대 이상의 양산 차량을 생산해야 한다는 항목을 만족시키기 위해 생산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페라리가 출전하기도 전에 그룹 B는 여러 사망 사고와 위험을 이유로 1986년 말 중단되게 된다.

 

레이스를 위해 태어난 288 GTO는 최대 출력 400마력의 엔진에 유리와 카본 섬유로 이루어진 1,160kg의 가벼운 차체 무게로 0-100km/h를 4.9초에 돌파하고 최고 속도는 304km/h였으며, 양산차로 시속 300km/h를 돌파한 것은 288 GTO가 처음이었다. 1986년 그룹 B가 중단되기 직전 엔진 출력을 650마력으로 업그레이드하고 무게는 940kg으로 경량화하여 최고 속도 362km/h에 이르는 288 GTO Evoluzione 모델을 발표하며, 에볼루지오네는 1년 뒤에 발표되는 F40 모델 개발의 베이스가 된다.

 

1984년부터 1987년까지 양산 차량 200대와 특별 주문 72대를 포함하여 총 272대가 생산되었으며, 역시 그 희소성으로 인해 현재 가치는 200만 달러(한화 24억 원)가 넘어간다.

 

46. 2003' Bentley Continental GT

고풍스럽고 올드했던 벤틀리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현대적이고 세련된 디자인을 선보인 모델, 2002년 파리 모터쇼에 첫 선을 보였을 때 그동안의 벤틀리에선 볼 수 없었던 스타일과 성능에 사람들은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벤틀리는 부유한 사업가 집안이었던 벤트리 형제에 의해 1919년 영국에서 설립, 채 몇 년도 되기 전에 1920년대 르망24에서 5회 우승이 빛나는 레이싱 명가였다. 하지만, 경제 대공황의 시기에 경영난으로 1931년 롤스로이스에 인수되고 롤스로이스 산하의 럭셔리 스포츠카 생산 부분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벤틀리의 디자인이나 개발 성향은 고급스러움만을 추구하던 롤스로이스와 상당히 유사해지게 된다. 

 

1998년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를 소유하고 있던 비커스사에서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를 묶어 매각을 시도하였고, 비커스사와 오랜 협력 관계에 있던 BMW를 가장 유력한 구매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개 입찰이 시작되었을 때 BMW보다 높은 금액을 제시한 폭스바겐이 이기며 상황은 꼬이기 시작한다. 폭스바겐은 입찰에서 이겨 롤스로이스와 벤틀리의 차량 디자인, 모델명, 생산 시설 그리고 롤스로이스의 상징인 그릴 디자인과 여신 조각상을 획득했지만, 롤스로이스의 이름과 로고 사용권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이름과 로고 사용권은 롤스로이스 자동차의 전신인 국유화된 항공기 엔진 제작회사 롤스로이스 홀딩스가 가지고 있었고, 공개 입찰에서 진 BMW는 재빠르게 롤스로이스 홀딩스로부터 이름과 로고 사용권을 사들인다. 폭스바겐은 롤스로이스의 차량을 생산할 수 있었지만 이름과 로고를 사용할 수 없었고, BMW는 이름과 로고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차량을 생산할 수 없었다. 또한, 그동안 벤틀리와 롤스로이스에 엔진을 공급해 주던 BMW는 공급 계약 해지를 무기로 압박을 시작한다. 여러 차례 협상이 오고 간 뒤에야 2002년까지는 협력 관계로 유지하고 2003년부터 BMW는 롤스로이스의 모든 권리를, 폭스바겐은 벤틀리의 모든 권리를 가지기로 합의한다.

 

2003년 BMW와의 분쟁 끝에 벤틀리의 완전한 소유권을 획득한 폭스바겐은 폭스바겐 페이톤의 플랫폼인 D1을 기반으로 560마력을 뿜어내는 6.0L W12 트윈터보 엔진에 ZF의 6단 팁트로닉 자동 변속기와 상시 4륜 구동 시스템을 탑재하여, 2.5톤의 육중한 무게에도 0-100km/h를 4.8초에 돌파하고 최고 속도는 318km/h를 낼 수 있는 벤틀리 컨티넨탈 GT를 대중 앞에 공개한다.

 

45. 1928' Mercedes-Benz SSK

메르세데스 벤츠 SSK는 포르쉐의 창업주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1928년 당시 일하고 있던 메르세데스 벤츠에서 마지막으로 설계한 스포츠카이며, 가장 아름다운 자동차 중 하나로 꼽힌다. SSK란 이름은 'Super Sports Kurz'의 약자로 Kurz는 독일어로 짧다는 의미이다. 지금 보면 상당히 길어 보이지만, 당시 기술력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성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조건 큰 엔진과 변속기가 필요했고, 엔진의 출력이 커질수록 휠베이스도 길어졌다. 하지만, 긴 휠베이스는 상대적으로 큰 회전 반경을 요구하게 되고 레이스 경기에서는 최대의 약점으로 작용했다. SSK의 휠베이스는 기반이 된 모델 S 보다 450mm가 짧은 2,950mm였으며, 동급의 다른 스포츠카가 평균 3,500mm 휠베이스를 가진 것에 비교하여 상당히 짧은 것이었다.

 

SSK는 7.1L 직렬 6기통 SOHC 엔진에 항공기 엔진에 쓰이던 슈퍼차저를 더해 200마력을 뽑아냈고, 최고 속도 190km/h를 찍으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차'에 등극하게 된다. 후에 300마력으로 업그레이드한 모델은 최고 속도 234km/h를 달성했다. 고성능의 슈퍼차저 엔진, 4단 변속기, 높은 선회력을 가진 짧은 휠베이스로 1929년 아르헨티나 500마일 경주를 시작으로 3년 동안 수많은 레이스에서 우승을 하게 되며 'Mighty Mercedes'라는 자랑스러운 별명을 얻게 된다.

 

정확한 생산량은 알 수 없지만 3년 동안 40개 미만의 SSK가 만들어졌으며, 대부분이 경주용으로 쓰여 소실되고 현재 4~5개 모델만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에는 가장 비싼 자동차 중 하나이다.

 

44. 1962' AC Cobra 260

1901년 영국에서 설립된 자동차 제조회사 AC는 이렇다 할 대표 모델 없이 작은 스포츠카를 만들어 레이스 경주 출전과 소량 판매를 하며 근근이 이어 가고 있었다. 많은 레이스에 참가하며 얻은 뛰어난 섀시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쓰고 있던 엔진은 2차 세계대전 이전에 BMW가 디자인한 브리스톨사의 값싼 직렬 6기통이었다. 그나마도 1961년에 브리톨사에서 엔진 생산이 중단되면서 대체할만한 엔진을 찾고 있었다. 이때 AC를 눈여겨본 사람이 바로 후에 쉘비 시리즈로 유명해진 캐럴 쉘비였다.

 

1959년 36세의 나이로 레이서에서 은퇴해 자동차 제작 사업을 시작하려고 했던 캐럴 쉘비는 AC의 뛰어난 섀시를 보고 이 섀시에 강력한 V8엔진을 합치면 멋진 자동차가 나올 거라는 것을 직감했고, AC의 경영진에게 접촉하여 자신이 AC의 차량에 얹을 V8엔진을 구해 줄 수 있다고 제의했다. 마침 새로운 엔진을 구하고 있던 AC는 흔쾌히 제의를 수락했지만, 사실 캐럴 쉘비에게는 그 많은 엔진을 구해줄 능력은 없었다. 엔진을 구하기 위해 레이서 시절의 인맥을 동원해 쉐보레의 경영진과의 미팅을 잡을 수 있었고, 쉐보레의 경영진에게 AC에 V8 엔진을 공급해줄 수 있는지 여부를 물어보았다. 하지만 쉐보레는 잘 팔리고 있던 콜벳의 경쟁자를 만들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고, 캐럴 쉘비는 바로 포드를 찾아갔다. 포드는 마침 쉐보레의 콜벳을 견제해줄 만한 자동차를 원하고 있었기에 협상은 순조로웠다.

 

AC의 경량 스포츠카 ACE의 강철 튜브 프레임에 포드에서 테스트용으로 제공된 3.6L V8 SOHC 엔진을 실고도 차량의 무게는 916kg밖에 나가지 않았다. 증가된 엔진 출력을 제어하기 위해 재규어 E-Type에 들어가는 4HU 후방 차동 장치도 장착되었다. 몇 달 후 완성된 차량은 미국 포드의 관계자들 앞에서 테스트를 하게 되고 테스트 결과에 만족한 포드는 양산용 엔진 공급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양산용 코브라에는 테스트용 3.6L가 아닌 264마력의 4.3L(260 cu in) V8엔진이 들어갔고 0-100km/h 5.5초, 최고 속도는 233km/h를 찍었다. 경량 2인승 스포츠카로는 뛰어난 성능이었다. 1962년 4월 뉴욕 모터쇼에 옐로우 골드 컬러의 코브라가 AC-Ford Cobra 260이라는 이름으로 첫 선을 보였고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쉘비 코브라'라는 이름으로 기억된다. 이후 코브라는 쉘비의 레이싱팀과 더불어 미국 전역을 누비며 수많은 레이스를 휩쓸게 된다.

 

43. 1970' Nissan Fairlady Z(S30) / Datsun 240Z

닛산 페어레이디를 잇는 후계 차종으로 개발된 2인승 소형 스포츠카, 일본에서는 닛산 페어레이디 Z(S30), 해외에서는 Datsun 240Z란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Datsun의 이름에 대해 얘기하자면, 닛산의 전신인 DAT(닷토) 자동차부터 알아봐야 한다. 닷토 자동차의 영문 이름 DAT는 창업주 세명 Den Kenjiro, Aoyama Rokuro, Takeuchi Aketaro의 이름 앞글자를 하나씩 따서 만들었다. 일본 발음으로는 닷토가 되며 '도망가는 토끼'라는 뜻의 한자와 발음이 같아 토끼같이 작고 재빠른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라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1930년 일본 정부에서 500cc 이하의 자동차는 면허 없이 운전할 수 있게 법을 재정하자 닷토 자동차는 495cc 자동차 라인을 새로 만들고 '닷토 자동차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Datson이라고 이름 붙였고 1933년부터는 Datsun으로 변경한다. 이미 1931년에 닛산 재벌 산하로 흡수되어 있던 닷토 자동차는 1934년에 닛산 자동차로 이름을 바꿨지만, 경승용차와 스포츠카 브랜드로 닷선이 인지도가 있었기에 닷선의 이름은 유지가 되고 해외에도 닷선의 이름으로 판매가 되기 시작한다.

 

페어레이디 Z는 당시 닷선의 미국 진출을 성공시키며 닛산 내에서 영향력이 컸던 미국 지사장 카타야마 유타카의 강력한 요청으로 개발이 시작되었다. 카타야마 유타카는 당시 여러 레이스에서 우승하며 미국에서 인기가 높았던 포르쉐와 경쟁할만한 소형 스포츠카를 원했고 그렇게 페어레이디 Z의 개발은 시작됐다. 페어레이디 Z의 개발에 사용된 엔진은 1966년 닛산이 인수한 프린스 자동차의 2.4L 직렬 6기통 엔진이었고, 이 엔진은 일본 내 레이스에서 성능이 입증되어 있었고, 닷선 510에도 실려 이미 미국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엔진이었다. 여기에 히타치 듀얼 카뷰레터와 4단 수동 변속기를 물려 151마력에 0-100km/h는 8.0초, 최고 속도 201km를 낼 수 있었다. 강력한 성능은 아니었지만 아름다운 디자인에 가볍고 다루기 쉬웠으며 가장 뛰어난 점은 가격이었다. 페어레이디 Z의 미국 가격은 3,526달러로 비슷한 성능의 포르쉐 911T의 6,430달러 보다 2,900달러나 저렴했다. 반응은 당연히 폭발적이었고 판매장에는 구매 대기자가 줄을 섰다. 

 

페어레이디 Z는 1971년 약 45,000 대, 1972년에는 약 50,000 대, 1973년에는 약 40,000 대를 팔아 치웠고, 10년 동안 총 55만 대가 판매되었다. 한 가지 일화를 얘기하자면 일본의 닛산 본사는 미국에서도 페어레이디 Z라는 이름으로 팔고 싶어 했다. '페어레이디'라는 이름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My Fair Lady'에서 따온 이름으로 닛산의 회장 카츠지 카와마타가 이 뮤지컬을 보고 지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본사의 경영진은 미국 뮤지컬에서 따온 이름이기에 당연히 미국 시장에서 잘 먹힐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 지사장 카타야마 유타카의 생각은 달랐고 순종적인 의미의 페어레이디는 스포츠카의 이름으로는 최악이라고 생각했고, 미국에 페어레이디 Z를 실은 첫 선적이 들어왔을 때 카타야마 유타카는 직접 가서 모든 차량의 FairLady 뱃지를 떼어 버렸다.

 

42. 2011' Lamborghini Aventador

아벤타도르는 이전 람보르기니 모델 중 가장 강렬했고, 가장 성공적이었던 기함급 라인업 무르시엘라고의 후속 모델로서 2011년 제네바 모터쇼에 처음 공개가 된다. 람보르기니의 차량 이름은 잘 알다시피 투우사나 투우소에서 따온다. 아벤타도르 역시 1993년 스페인 사라고사 투우장에서 용감하게 싸운 황소의 이름에서 따 왔다.

 

아벤타도르의 엔진은 아우디에서 새롭게 개발한 6.5L V12 자연흡기 엔진으로 최대 출력은 무르시엘라고 보다 60마력 높은 700마력에 달하며, 운전석 전체를 카본으로 만든 유니 바디 카본 터브(통, 욕조라는 뜻)에  앞뒤로 프레임을 연결한 방식을 사용하여 차체 강성과 안전성은 높아지고 무게는 무르시엘라고 보다 230kg이나 가벼운 1,575kg을 달성했다. 서스펜션은 F1 같은 레이스에서 쓰이는 푸시로드 타입의 서스펜션을 채용해 차체를 낮추고 코너링 성능을 향상시켰고, 무거운 DTC를 빼고 가벼운 7단 싱글 클러치 전자식 수동 변속기를 사용하여 무게는 가벼워지고 변속 시간은 DTC보다 빨라졌다.

 

아벤타도르는 700마력의 고성능 엔진, 푸시로드 서스펜션, 차체 전체에 적용된 경량화 기술과 풀타임 4륜 구동 시스템으로 0-100km/h는 단 2.9초, 최고 속도 350km/h의 성능을 발휘한다. 2011년 나온 이래 현재까지 10년 동안 약 9,500대가 생산되었다.

 

41. 2009' Ferrari 458 Italia

2004년 공개되어 5년 동안 판매되었던 F430을 대체하기 위한 후속 모델, 2009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처음 첫 선을 보였으며, 환경 규제로 인해 페라리의 마지막 V8 자연흡기 엔진을 탑재한 모델이 되었다. F430의 후속 모델이긴 하지만, F1에서 획득한 기술로 완전히 새롭게 설계되었으며, 이전 여러 모델들과 마찬가지로 F1 드라이버 미하엘 슈마허가 개발에 참여하였다.

 

모델명 중 458은 4.5L 8기통 엔진을 뜻하며, 이탈리아는 페라리의 고향인 이탈리아를 대표한다는 의미로 붙여졌다. 4.5L V8 자연 흡기 엔진은 최고 출력 570마력에 달하며, 레드존이 9,000 rpm으로 당시 양산차 중에서는 가장 높은 수치였다. 또한, 페라리 최초의 DCT 기반 7단 반자동 변속기를 사용하는데, 이 변속기는 변속기 개발 회사로 유명한 게트락 제이며 SLS AMG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모델을 세팅만 변경하여 적용한 것이다. 전면에는 더블 위시본, 후면에는 멀티링크 서스펜션에 전자식 디퍼렌셜과 F1 트랙션 컨트롤을 접목시켜 이전 모델인 F430과 비교하여 코너링 가속도를 32% 향상 시켰다. 0-100km/h는 3.4초, 최고 속도는 340km/h이며, 브레이크는 카본 세라믹으로 100-0km/h 제동에 걸리는 거리는 불과 32.5m 밖에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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